계약서에 '개인사업자'라 써도 근로자로 추정된다
근로자 추정제 연내 입법 목표 — 144만 특고·플랫폼 노동자, 증명책임이 뒤집힌다
고용노동부가 특고·플랫폼 노동자 144만 명을 대상으로 사용자가 '근로자가 아님'을 입증하지 못하면 근로자로 추정하는 '근로자 추정제'를 연내 입법 목표로 추진한다. 판례별로 근로자성 인정 여부가 갈린 조건을 대조하고, 위탁·도급 계약 사업장이 지금부터 챙겨야 할 점을 짚었다.
배달앱 기사, 대리운전 기사, 방문판매원, 보험설계사 — 계약서에는 다들 '개인사업자'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만약 그 계약서만으로는 부족하고, 사용자가 '이 사람은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직접 입증해야만 근로자가 아닌 게 된다면 어떨까. 고용노동부가 그런 법을 올해 안에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름하여 '근로자 추정제'다.
무슨 일이 있었나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2026년 8월 12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일하는 사람 권리 기본법(일터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 두 법안을 연내 입법 완료 목표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두 법안 모두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플랫폼 노동자처럼 계약서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겨냥한다. 대상 규모는 약 144만 명으로 추산된다.
고용노동부는 이보다 앞서 2025년 12월 11일 업무보고에서도 같은 두 법안을 2026년 상반기 안에 입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시한은 이미 지났고, 실제 법안 발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8월 발표는 사실상 같은 약속을 다시 꺼내며 시점을 '연내'로 재조정한 것이다.
핵심은 증명책임의 방향이다. 지금까지는 특고·플랫폼 종사자 쪽이 소송이나 노동위원회 구제신청을 통해 '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되면 이 순서가 뒤집힌다. 노무를 제공받는 사업주가 '이 사람은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일단 근로자로 추정하고 노동법을 적용한다. 입증하지 못하면 지는 쪽이 사용자로 바뀌는 셈이다.
왜 지금 이 문제가 커졌나 — 현행 기준부터 보자
근로기준법 제2조(2026년 8월 20일 시행 기준)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만 정의한다. 계약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본다는 뜻인데, 정작 '실질'을 판단하는 구체적 기준은 법조문이 아니라 판례가 쌓아온 것이다.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했는지, 취업규칙이 적용되는지, 근무시간·장소에 구속됐는지 같은 '종속노동성' 요소와, 작업도구를 스스로 갖췄는지·이윤과 손실을 스스로 떠안는지 같은 '독립사업자성' 요소를 종합해서 본다. 반대로 기본급이 정해졌는지,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했는지, 4대보험에 근로자로 가입돼 있는지는 부차적 요소로만 취급된다 — 사용자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부분이라 이것만으로 근로자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게 대법원 판례(2006.12.7. 선고 2004다29736)의 태도다.
문제는 이 판단이 소송이나 구제신청을 거쳐야만 나온다는 점이다. 그 사이에 노무제공자는 산재보험도, 부당해고 구제도, 노동조합 활동도 보장받지 못한 채 몇 달에서 몇 년을 버텨야 한다. 플랫폼과 AI 알고리즘이 업무 배분·평가·계약 해지를 자동으로 처리하는 구조가 늘면서 이 공백이 더 자주, 더 크게 드러나고 있다는 게 고용노동부의 설명이다.
같은 '위탁계약'인데 결과는 왜 갈렸나 — 판례 대조
근로자성 판단이 얼마나 사안마다 달라지는지는 최근 판례·판정만 나란히 놓아도 드러난다. 아래 네 건은 모두 '계약서상 개인사업자'였던 사람들의 사건이다.
| 사건 | 직종 | 쟁점 | 결과 | 갈린 조건 |
|---|---|---|---|---|
| 대법원 2024두32973 (2024.7.25) | 플랫폼 기반 운전기사 | 근로자성 | 인정 (플랫폼 노동자 최초 인정) | 알고리즘이 배차·업무 배분·수행 방식을 실질적으로 통제 |
| 대법원 2021두33715 (2022.4.14) | 보험회사 위탁계약형 지점장 | 근로자성 | 원심 파기환송(하급심 재검토 지시) | 계약 형식이 아니라 종속의 실질부터 다시 심리하라는 취지 |
| 노동위 2026년 판정 (서울지노위, 2026.7.14) | 유튜브 PD | 근로자성·계약만료 | 근로자 인정 | 업무계약이라도 묵시적 갱신·지휘감독 정황 확인 |
| 노동위 2026년 판정 (울산지노위, 2026.2.5) | 지사장 | 근로자성 | 불인정, 구제신청 각하 | 근로자성 부정되며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으로 분류돼 구제신청 자체가 불가 |
네 건을 나란히 보면 '위탁계약'이라는 형식은 결과를 결정하지 않는다. 알고리즘이 업무를 실질적으로 통제했는지, 지휘·감독 정황이 남아 있는지가 갈랐다. 근로자 추정제는 바로 이 지점 — 사안마다 몇 달씩 걸려 다퉈야 했던 '실질 판단'을 사전 절차 없이 일단 근로자 쪽에 유리하게 뒤집어 놓겠다는 것이다.
반론 — 경영계가 우려하는 지점
경영계는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되면 실제로는 독립적인 사업자에게도 일률적으로 노동법상 의무(4대보험 가입, 퇴직금, 연장근로수당 등)가 적용돼 계약 형태 자체를 재검토해야 하는 사업장이 급증할 것을 우려한다. 특히 소규모 플랫폼·에이전시 업체는 소송 대응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입증책임 전환'을 그대로 떠안게 되면, 계약 관계를 아예 축소하거나 자동화로 대체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노동계는 지금까지의 소송 중심 구제는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커 실효성이 떨어졌다며, 추정 방식으로 전환해야 사각지대를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무자가 지금 챙겨야 할 것
- 대상 확인 — 위탁·도급·프리랜서 계약으로 노무를 받는 사업장이라면, 계약자 명단을 뽑아 업무 지시 방식·근무시간 지정 여부·업무 도구 소유 주체를 먼저 정리해 둔다. 법 시행 후 갑자기 대응하면 늦다.
- 기록 확보 — 지금부터 계약자에게 업무 배분·평가를 어느 수준까지 지시하는지 내부 문서(업무 매뉴얼, 알고리즘 운영 방식, 평가 기준)를 정리해 두면, 법 시행 이후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할 때 근거로 쓸 수 있다.
- 법안 발의 시점 추적 — 2025년 12월과 2026년 8월 두 차례 모두 '입법 목표 시점'만 나왔고 실제 법안 발의는 없었다. 국회 소관 상임위(환경노동위원회) 발의 여부를 계속 확인해야 실제 시행 시점에 대비할 수 있다.
실제 자문 현장에서 보면, 위탁계약 사업장 상당수가 '계약서에 개인사업자라고 썼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노동위 구제신청 단계에서야 업무 지시 이력, 평가 자료 같은 걸 뒤늦게 찾는다. 근로자 추정제가 시행되면 이 순서가 완전히 뒤집힌다 — 사업장이 먼저 '근로자가 아니다'를 입증할 자료를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자료를 평소에 쌓아 둔 곳은 거의 없었다. 지금부터 계약 관계별로 지휘·감독 수준을 문서화해 두는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사업장의 격차가 법 시행 이후 크게 벌어질 것으로 본다.
전망
두 법안 모두 아직 국회에 발의되지 않은 상태다. 2025년 12월 목표였던 '2026년 상반기 입법'이 지켜지지 않은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 '연내 입법' 목표도 실제 국회 통과까지는 시일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 다만 법안 내용의 방향성 자체는 이미 두 차례 업무보고에서 반복해서 확인된 만큼, 위탁·도급 형태로 노무를 제공받는 사업장이라면 법 시행 이전부터 계약 실태를 미리 점검해 두는 편이 안전하다.
자주 묻는 질문
Q. 근로자 추정제가 시행되면 계약서만 바꾸면 되나요?
아니다. 계약서 형식이 아니라 실제 업무 지시·통제 실태가 판단 기준이라 계약서 문구만으로는 추정을 뒤집을 수 없다.
Q. 근로자 추정제와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같은 법인가요?
다르다. 일터기본법은 계약·안전 등 권리를 선언하는 기본법이고, 근로자 추정제는 증명책임을 전환하는 별도 제도다.
Q. 법이 아직 통과 안 됐는데 지금 대비할 이유가 있나요?
있다. 지휘·감독 기록은 사후에 만들 수 없어 시행 전부터 문서화해 둬야 입증에 쓸 수 있다.
Q. 특고·플랫폼 노동자는 지금도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나요?
있다. 다만 소송·구제신청으로 본인이 종속성을 입증해야 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Q. 대상은 몇 명 정도인가요?
고용노동부 추산으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 노동자 약 144만 명이 해당한다.
출처: 아시아경제 「특고·플랫폼 종사자 보호, 근로자 추정제 연내 입법」(2026-08-12) 링크 · 고용노동부 국회 업무보고 자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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