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교섭 대상 아니다"던 정부, 석 달 만에 뒤집힌 이유
경기지노위, 개정 노조법 시행 후 처음으로 하청 '임금' 교섭에서 원청 사용자성 인정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하청 노조의 '임금' 교섭 요구에서 원청(SPC GFS)의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다만 노조 측 당사자 적격 문제로 중앙노동위원회가 초심 판정을 취소해 확정 선례는 아니며, 원청은 도급대금 산정 방식과 인건비 결정 구조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박수근 중앙노동위원장은 지난 4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임금은 법리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교섭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석 달 뒤,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하청 운수사 소속 배송기사 노조가 원청인 SPC GFS를 상대로 낸 '임금·수당' 교섭 요구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어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자로서 교섭 상대방이 되는 지위)을 인정한 것이다. 개정 노동조합법(이른바 노란봉투법 개정 노조법) 시행 이후 '임금' 의제에서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된 사실상 첫 사례다.
무슨 일이 있었나
경기지노위는 SPC GFS가 하청 운수사에 지급한 운송료와, 그 운수사가 배송기사들에게 실제로 지급한 운임이 사실상 동일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운임의 범위, 각종 수당과 유류비 기준, 그리고 이를 정하는 협의 과정 전반에 원청이 관여해온 정황도 확인됐다. 결론은 이랬다. 하청 운수사가 임금을 독자적으로 정할 수 있는 재량이 사실상 크지 않았다는 것. 계약서상 갑을 관계는 원청-하청이었지만, 돈이 흘러가는 실제 구조를 뜯어보니 원청이 임금의 '실질적 결정자'에 가까웠다는 판단이다.
다만 이 사건을 무조건 '확정된 선례'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 신청 노조가 최근 조직을 변경하면서(조합원들이 탈퇴 후 다른 노조로 이동) 정작 사업장 내에 남은 조합원이 없어 당사자 적격을 잃었고, 중앙노동위원회는 이를 이유로 초심 판정 자체를 취소했다. 즉 '임금 사용자성을 인정한다'는 지노위의 실체적 판단은 나왔지만, 그 판정이 절차적 하자로 뒤집힌 애매한 상태다. 같은 재심에서 IPARK HDC는 사용자 인정이 유지됐고,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사용자성 불인정 기각이 그대로 유지됐다. 노동위 판단이 사안마다 갈리고 있다는 뜻이다.
왜 이번 판정이 중요한가
개정 노조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하지 않은 자라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으면 사용자로 인정한다는 취지로 사용자 개념을 넓혔다. 시행 초기 지방노동위의 판단은 주로 산업안전처럼 원청의 통제가 눈에 보이게 명확한 의제에 몰려 있었다. 안전모를 씌우고 작업 동선을 통제하는 것과, 통장에 찍히는 월급 액수를 정하는 것은 층위가 다르다는 암묵적 구분이 있었던 셈이다.
이번 건은 그 경계선을 임금까지 밀어붙인 첫 케이스다. 고용노동부의 개정 노조법 해석지침도 이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원청이 투입 인원과 근로시간 등을 기준으로 인건비를 사실상 결정하거나, 임금 인상률·수당 기준을 직접 제시해 하청 사용자의 재량을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경우라면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게 지침의 골자다. 반대로 원청이 평균적인 임금 수준과 필요 인원을 참고해 도급 총액만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하청이 자율적으로 임금을 지급한다면 사용자성이 인정될 여지는 작다. 결국 핵심은 '도급 총액 방식이냐, 실비 정산 방식이냐'의 구조 차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판정이 해석지침 취지에 부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박지순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원청의 교섭 관행을 깨고 하청 사용자를 사실상 배제할 수 있는 판정"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경영계 일각에서는 지노위가 산업안전 등 일부 의제만 인정하고 임금·성과급 판단은 유보하는 경향이 이어지면서, 하청노조가 임금 의제를 계속 재상정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부는 모든 의제를 사전에 일괄 확정하기는 어렵다며, 이견이 생기면 부당노동행위 구제절차로 다투면 된다는 입장이다.
원청 입장에서 지금 점검해야 할 것들
물류·택배·건설·청소경비·제조 사내하청처럼 원청이 도급단가나 투입 인원, 인건비 기준을 실질적으로 정하는 업종이라면 남 일이 아니다. 도급 계약 구조를 다음 기준으로 자가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 점검 항목 | 사용자성 인정 쪽으로 기우는 구조 | 사용자성 부정 쪽에 가까운 구조 |
|---|---|---|
| 도급대금 산정 방식 | 실비 정산형(운송료=배송기사 운임과 사실상 동일) | 총액 도급형(하청이 총액 범위 내 자율 배분) |
| 임금 항목 결정 권한 | 수당·유류비 기준을 원청이 직접 제시·협의 | 수당·유류비 기준을 하청이 독자 설계 |
| 인건비 변경 절차 | 원청 승인 없이는 임금 조정 불가 | 하청이 자체 판단으로 임금 조정 가능 |
| 투입 인원·근로시간 | 원청이 인원·시간을 세부 지정 | 하청이 인력 운용을 자율적으로 결정 |
| 계약서와 실제 운영 | 계약서상 도급이지만 실제로는 임금이 그대로 전달 | 계약서와 실제 운영 방식이 일치 |
체크리스트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도급대금 산정 근거자료(원가계산서, 정산 내역)에 배송기사·근로자 개인별 임금 항목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지 확인한다.
- 수당·유류비·인상률 등을 원청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관행이 있다면 협의 절차와 최종 결정 권한 소재를 문서로 남긴다.
- 하청사가 도급 총액 범위 내에서 임금을 실제로 자율 배분하고 있는지, 형식이 아니라 실질을 점검한다.
- 교섭요구 사실 공고가 들어오면 사용자성 여부를 먼저 다투기보다, 해당 의제에서 어떤 근거로 인정 또는 부정될 수 있는지 사전에 법적 검토를 거친다.
- 사용자로 인정된 후 정당한 이유 없이 교섭을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노조법 위반)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한다.
자문하다 보면 원청 실무자들이 가장 놀라는 지점은 '우리는 임금을 정한 적이 없다'는 인식과 도급대금 정산 서류가 실제로 보여주는 그림이 정반대인 경우다. 실비 정산 방식으로 오래 운영해온 사업장일수록 계약서만 도급이고 정산 내역서에는 개인별 운임·수당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막상 교섭요구 공고 단계에서 사용자성을 다투려 해도 반박할 서류가 마땅치 않은 사례를 여러 번 봤다. 사건이 터지고 나서 구조를 바꾸긴 늦다. 지금 정산 방식부터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고용노동부는 노동위원회가 특정 근로조건에 대해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하면, 원청이 사용자로서 교섭 절차를 진행하도록 지원하는 '사용자성 판단 지원 위원회' 운영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이번 SPC GFS 건처럼 노조 측 당사자 적격 문제로 판정이 뒤집히는 사례가 반복되면, 실체 판단은 쌓여도 확정 선례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애매한 국면이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지노위 단계에서 임금 의제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 논리 자체는 이미 한 번 공식화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물류·건설·제조 사내하청 구조를 가진 원청이라면, 다음 유사 사건에서는 절차 하자 없이 실체 판단까지 확정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도급 구조를 미리 정비해두는 편이 안전하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번 SPC GFS 판정으로 임금 교섭 원청 사용자성이 확정된 건가요?
아니다. 노조 측 당사자 적격 문제로 중앙노동위원회가 초심 판정을 취소해, 확정 선례로 보기는 어렵다.
Q. 어떤 경우에 원청이 임금 교섭의 사용자로 인정되나요?
원청이 인건비를 사실상 결정하거나 임금 기준을 직접 제시해 하청의 재량을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경우다.
Q. 도급 총액 방식이면 사용자성 인정을 피할 수 있나요?
하청이 총액 범위 내에서 임금을 실제로 자율 배분한다면 인정 여지가 작아진다.
Q. 원청이 교섭을 거부하면 어떤 책임을 지나요?
사용자로 인정된 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Q. 어떤 업종이 특히 영향을 받나요?
물류·택배·건설·청소경비·제조 사내하청 등 원청이 도급단가·인건비를 실질적으로 정하는 업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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