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일자리 없애면 누가 책임지나 — 옥스퍼드 교수가 던진 '플렉시큐리티' 카드
덴마크 황금삼각형과 한국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의 거리
옥스퍼드대 칼 베네딕트 프레이 교수가 AI 시대 한국 노동시장 개혁 해법으로 '플렉시큐리티'를 제안했습니다. 덴마크식 황금삼각형(유연한 해고·두터운 실업급여·적극적 고용지원)과 한국 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 현실의 격차를 짚고, 사업주와 인사담당자가 지금 챙겨야 할 실무 포인트를 정리했습니다.
회사가 AI 도입으로 인력을 줄이려 할 때, 지금 근로기준법은 이를 얼마나 막고 있을까. 그리고 만약 그 규제를 풀어준다면, 실직한 근로자는 무엇으로 버텨야 할까. 옥스퍼드대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 교수가 최근 문화일보 인터뷰(2026년 7월 27일 보도, '문화미래리포트 2026')에서 던진 질문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한국에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 —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전성(security)을 합친 노동시장 개혁 모델 — 도입을 제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모델의 핵심은 해고를 쉽게 하는 대신 실업급여와 재취업 지원을 파격적으로 강화하는 '교환' 구조다. 한국은 지금 그 교환의 절반(강한 해고 규제)만 가지고 있고, 나머지 절반(두터운 안전망)은 아직 멀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프레이 교수는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에서 'AI와 노동'을 연구하는 석좌부교수다. 그는 이번 인터뷰에서 AI가 모든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전망에 선을 그으면서도, 저출생·고령화로 노동력이 부족한 한국 상황에서는 "피지컬 AI로 부족한 노동력을 단기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는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되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기업이 AI 자동화를 적극 도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의 원형이 바로 덴마크식 플렉시큐리티, 흔히 '황금삼각형(golden triangle)'이라 불리는 모델이다.
덴마크 모델은 세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사용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는 느슨한 고용보호법제. 둘째, 실직 시 소득의 상당 부분을 장기간 보전해주는 두터운 실업급여(구직급여). 셋째, 실직자를 빠르게 재취업시키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 직업훈련, 재취업 알선, 취업 컨설팅 등이다. 덴마크에서는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최장 104주(37시간 기준 약 3,848시간)에 달하고, 직전 3년간 일정 소득(212,400크로나 이상) 요건만 충족하면 수급권이 발생한다. 대신 사회적 차별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해고 자체는 상대적으로 쉽다.
왜 이게 중요한가 — 한국은 지금 '반쪽 모델'
한국 노동법 구조를 이 삼각형에 대입해보면 균형이 완전히 깨져 있다는 게 드러난다. 근로기준법 제23조는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한다. 이 조항 덕분에 정리해고든 통상해고든 사용자가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부당해고로 무효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즉 '유연성' 축이 덴마크보다 훨씬 약하다. 반면 안전망 축인 고용보험법상 구직급여는 이직 전 평균임금의 60%를, 가입기간과 연령에 따라 120일에서 270일간 지급한다. 덴마크의 최장 2년, 소득 상당 부분 보전 구조와 비교하면 지급 기간도 대체율 구조도 상당히 얇다.
다시 말해 한국은 해고는 어렵게 막아놓고, 정작 실직 이후 안전망은 상대적으로 짧고 얇은 '이중으로 조심스러운' 구조다. 프레이 교수의 제안은 이 균형을 정반대로 재배치하자는 것에 가깝다. 해고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과 지급기간, 그리고 재취업 지원 인프라를 대폭 끌어올리자는 취지다. 다만 이는 근로기준법 개정과 고용보험기금 재정 확충이라는 두 개의 큰 산을 함께 넘어야 하는 이야기라, 당장 법제화 논의가 시작된 단계는 아니다.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건 '이 개념이 앞으로 인사노무 실무에 어떤 신호를 주는가'를 정확히 읽는 것이다.
한국 vs 덴마크 — 플렉시큐리티 3요소 현황 비교
| 구분 | 덴마크(황금삼각형) | 한국 현행 제도 | 실무 시사점 |
|---|---|---|---|
| 해고 규제(유연성) | 사회적 차별 등 제외하면 비교적 자유로운 해고 | 근로기준법 제23조 - 정당한 이유 필요, 부당해고 시 원직복직·무효 | 현재로선 해고 요건 완화 논의 없음. 절차 준수가 여전히 최우선 |
| 실업급여(안전망) | 최장 104주, 소득요건 충족 시 상당 부분 대체 | 평균임금 60%, 120~270일 지급(고용보험법 제40·50조) | 기간·대체율 확대 논의는 재정 부담 커 단기간 내 큰 변화 어려움 |
| 적극적 고용지원서비스 | 직업훈련·재취업 알선 인프라 상시 가동 | 고용센터 중심이나 인프라·예산 상대적으로 제한적 | 정부 지원사업(전직지원 컨설팅 등) 활용 여지는 지금도 존재 |
| AI·자동화 도입 유인 | 해고 부담이 낮아 신기술 도입에 상대적으로 우호적 | 해고 부담이 커 인력 구조조정보다 재배치·직무전환 선호 경향 | AI 도입 시 감원보다 배치전환·재교육 설계가 법적 리스크 낮음 |
실무 주목 포인트 — 사업주·인사담당자가 지금 챙길 것
- 플렉시큐리티는 아직 '학계 제안' 단계다. 근로기준법 제23조 해고 규제가 당장 완화된다고 전제하고 인력계획을 세우면 안 된다.
- AI 도입으로 특정 직무가 축소될 경우, 정리해고 요건(경영상 이유, 해고 회피 노력, 합리적·공정한 기준, 근로자대표 협의)은 여전히 그대로 적용된다는 점을 전제로 절차를 설계해야 한다.
- 해고보다 재배치·직무전환·재교육이 현재 구조에서는 법적 리스크가 훨씬 낮다. AI 도입 로드맵을 짤 때 '감원 계획'이 아니라 '전환 계획'으로 설계하는 편이 분쟁 소지를 줄인다.
- 고용보험법상 각종 지원사업(직업훈련지원금, 전직지원장려금 등)은 지금도 활용 가능하다. 플렉시큐리티 논의와 별개로 기존 제도를 먼저 점검하는 것이 실익이 크다.
- 향후 실업급여 소득대체율·지급기간 확대 논의가 본격화되면 고용보험료율 인상 이슈로 이어질 수 있어, 인건비 계획에 장기 변수로 인식해둘 필요가 있다.
자문 현장에서 보면 회사들이 '해고가 쉬워질 것'이라는 뉴스에 먼저 반응해 인력 구조조정 계획부터 세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실제 분쟁으로 이어지는 사건들을 보면, AI 도입을 이유로 한 해고는 결국 근로기준법 제23조의 '정당한 이유' 심사를 그대로 받는다. 최근 상담 사례에서도 AI 시스템 도입 후 해당 업무 인력을 곧바로 정리해고했다가 해고 회피 노력(배치전환·희망퇴직 등) 부족을 이유로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플렉시큐리티 같은 큰 담론이 뉴스에 등장할 때일수록, 지금 당장의 법적 의무는 오히려 더 보수적으로 지키는 것이 실무적으로 안전하다.
전망
프레이 교수의 제안이 곧바로 입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근로기준법 개정은 노사정 합의가 필수적인 사안이고, 실업급여 확대는 고용보험기금 재정 건전성과 직결돼 있어 논의에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다만 AI 시대 노동시장 개혁 논의에서 플렉시큐리티가 하나의 '레퍼런스 모델'로 계속 소환될 가능성은 높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지금 이 개념을 '해고가 곧 쉬워진다'는 신호로 오독하지 말고, 오히려 'AI 도입 시 안전망 강화가 먼저 논의될 것'이라는 정책 방향성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당장 해야 할 일은 정리해고 요건 준수와 재교육·재배치 체계 정비다.
자주 묻는 질문
Q. 플렉시큐리티가 도입되면 한국도 해고가 쉬워지나요?
아직 제안 단계로 근로기준법 개정 논의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현재는 해고 규제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Q. 덴마크 실업급여는 한국보다 얼마나 더 두터운가요?
덴마크는 최장 104주 지급되나 한국 구직급여는 평균임금 60%, 120~270일로 기간이 짧습니다.
Q. AI 도입으로 인력을 줄이려면 지금 어떤 절차를 지켜야 하나요?
근로기준법상 경영상 이유, 해고 회피 노력, 공정한 기준, 근로자대표 협의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합니다.
Q. 회사가 지금 활용할 수 있는 관련 지원제도가 있나요?
고용보험법상 직업훈련지원금, 전직지원장려금 등 기존 제도를 우선 점검하는 것이 실익이 큽니다.
Q. 플렉시큐리티 논의가 인건비에 영향을 주나요?
실업급여 확대 논의가 본격화되면 고용보험료율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장기 변수로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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