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193호 협약 채택 — 기업은 플랫폼 노동자를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나
계약서에 '프리랜서'라 써도 끝이 아니다 — 사실우선원칙·알고리즘 책임·단체교섭권, 협약 3대 핵심과 한국 기업 대응 로드맵
ILO 제114차 총회가 2026년 6월 12일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역사상 첫 국제협약(193호)을 압도적 찬성으로 채택했습니다. 계약서 문구가 아닌 실제 근로 조건으로 고용지위를 판단하는 사실우선원칙, 알고리즘 공개 의무, 단체교섭권 보장이 핵심입니다. 한국은 비준 절차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근로자추정제 입법과 사법 해석 경로로 조기 영향이 예상됩니다.
배달라이더 계약서에 '위탁계약', '독립사업자'라고 적혀 있다면 그 문구만으로 플랫폼 기업은 책임을 피할 수 있을까. 2026년 6월 12일, 국제노동기구(ILO)는 그 질문에 정면으로 답했다. 제114차 ILO 총회에서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제193호 협약이 찬성 406표, 반대 8표, 기권 36표라는 압도적 표차로 채택됐다. 협약의 출발점은 간결하다. "계약서 문구가 아니라 실제 근로 조건이 고용지위를 결정한다."
무슨 일이 있었나
ILO가 플랫폼 노동만을 다루는 독립 협약을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존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혹은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들이 노동 협약의 공식 보호 대상에 들어온 전례가 없었다.
한국 대표단은 찬성표를 던졌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즉각 비준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반대 입장을 유지했다. 정부는 찬성으로 기울었지만, 협약이 국내법으로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 현재 그 절차는 시작되지 않았다.
한국노총은 협약 채택 직후 최저임금법 2·6조 개정안(근로자추정제) 국회 처리를 함께 촉구했다. 근로자추정제는 "실제로 플랫폼을 통해 일하면 우선 근로자로 추정하고, 플랫폼이 반박 입증해야 한다"는 구조로, ILO 협약의 사실우선원칙을 국내 입법으로 전환하는 핵심 수단이다.
협약 3대 핵심 — 기업이 주목해야 할 지점
① 사실우선원칙 (Primacy of Facts)
협약은 고용지위 판단에서 '계약서 문구'를 배제하고 실제 업무 지휘·감독 여부, 작업 방식 통제, 수익 배분 구조 등 사실관계를 기준으로 삼도록 명시했다. 한국 대법원도 "근로자성은 사용종속관계의 실질로 판단한다"는 기준을 오래전부터 유지해 왔다. 달라지는 점은 이 기준이 국제 규범으로 격상돼 비준국에 법적 의무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② 알고리즘 책임성 (Algorithm Accountability)
플랫폼 노동에서 배차 거부, 계정 정지, 수수료율 변경은 알고리즘이 결정한다. 협약은 플랫폼에 두 가지 의무를 부과했다. 첫째, 채용 전 알고리즘이 근로 조건에 미치는 영향을 사전 공개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결정을 내릴 때 서면으로 이유를 설명하고 인간 관리자의 검토를 받게 해야 한다. 이 조항은 국내에서 현재 어떤 법령으로도 보장되지 않는다.
③ 단체교섭권 (Collective Bargaining)
협약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도록 했다. 한국에서는 2024년 시행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으로 특수고용직·간접고용 종사자의 교섭 범위가 일부 확대됐지만, 여전히 플랫폼 기업이 원청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는 범위는 좁다.
한국 현행 제도 vs ILO 193호 협약 비교
| 항목 | 한국 현행 기준 | ILO 193호 협약 | 갭 |
|---|---|---|---|
| 고용지위 판단 | 대법원 판례 기준(사용종속관계), 입증 부담 노동자 측 | 사실우선원칙, 입증 부담 플랫폼 측 | ⚠️ 입증 책임 역전 필요 |
| 알고리즘 공개 | 별도 규정 없음 | 채용 전 공개 의무 + 불이익 결정 서면 설명 | ⛔ 국내 미도입 |
| 최저임금 적용 | 근로자 인정 시에만 적용 (특고직 제외) | 협약상 근로자 분류 시 최저임금 보장 | ⚠️ 근로자추정제 입법 연계 |
| 단체교섭권 | 노란봉투법으로 일부 확대, 원청 책임 범위 제한적 | 플랫폼 종사 모든 노동자에게 결사·교섭권 보장 | ⚠️ 추가 입법 필요 |
| 업무 비용 환급 | 개별 계약 의존 | 협약 명시 의무 | ⛔ 국내 미도입 |
| 데이터·개인정보 권리 | 개인정보보호법 적용(근로자성 무관) | 플랫폼 노동 맥락 전용 보호 명시 | ✅ 부분 충족 |
실무 주목 포인트 — 기업 체크리스트
- 계약서 재점검: '위탁계약·독립사업자' 문구가 있어도 배차 통제·업무 지시가 있으면 사실우선원칙 하에 근로자로 분류될 수 있음. 특수고용직 용역업체와의 계약 구조를 실질 기준으로 재검토할 것.
- 알고리즘 내부 문서화: 지금은 법적 의무가 없지만 비준 이후를 대비해 배차·평점·계정 정지 기준을 내부 문서화하는 것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권고됨.
- 근로자추정제 입법 모니터링: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4대보험 적용 여부가 즉각 쟁점화. 인건비 구조 시뮬레이션을 미리 준비해야 함.
- 단체교섭 대응 체계: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플랫폼 기업을 상대로 한 교섭 요구가 늘고 있음. ILO 협약이 비준되면 교섭 거부에 대한 부당노동행위 리스크가 현저히 높아짐.
- 비준 시점 주시: ILO 협약은 채택 후 비준에 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많음. 그러나 국내 판례는 이미 ILO 협약 취지를 해석 기준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있어 비준 이전에도 영향력이 작용할 수 있음.
플랫폼 기업을 상대하는 자문 현장에서 가장 자주 보는 패턴은, 계약서에 '독립사업자'로 명기해 놓고도 앱으로 실시간 배차를 통제하고 별점이 낮으면 계정을 정지하는 구조입니다. 대법원은 이미 이런 구조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한 판결을 여럿 냈고, ILO 193호 협약은 그 판단 기준을 국제 표준으로 굳히는 것입니다. 비준 전이라도 협약 채택 자체가 향후 판정에서 해석 기준으로 인용될 가능성이 있어, 지금 계약·알고리즘 구조를 점검하지 않으면 소송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됩니다.
전망 — 비준까지, 그 이후까지
ILO 협약은 채택 이후 각 회원국이 개별 비준해야 국내법과 동일한 구속력을 갖는다. 한국은 협약 채택에 찬성했지만 비준 일정은 아직 없다. 과거 ILO 핵심협약(결사의 자유·강제노동 금지 등)의 경우 채택 수십 년 만에 비준한 사례도 있어 속도를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두 가지 경로가 동시에 압박을 가할 전망이다. 하나는 국내 입법 — 근로자추정제가 통과되면 협약 비준 없이도 실질적 효과가 도입된다. 다른 하나는 사법 해석 — 법원과 노동위원회가 사실우선원칙을 기존 판례 흐름의 연장선에서 적극 원용할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준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전략이 점점 위험해지는 이유다.
플랫폼 노동자 220만 명 시대, 이제 계약서 한 줄로 노동법을 우회하는 전략의 수명이 다가오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 ILO 193호 협약은 지금 당장 한국 기업에 적용되나요?
아직 아닙니다. 협약은 국회 비준을 거쳐야 국내 법적 효력이 발생합니다. 현재 비준 절차는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Q. 플랫폼 노동자가 근로자로 인정받으려면 어떤 요건이 필요한가요?
현행 대법원 기준은 업무 지휘·감독 여부, 근무시간·장소 구속 여부, 비품 제공 여부 등 사용종속관계의 실질을 종합 판단합니다. ILO 협약은 이 입증 책임을 플랫폼 측으로 전환하는 방향입니다.
Q. 근로자추정제 입법이 통과되면 어떤 영향이 생기나요?
플랫폼 종사자는 별도 소송 없이 우선 근로자로 추정됩니다. 최저임금·4대보험·퇴직금 적용 여부가 즉각 쟁점화되며 플랫폼 기업의 인건비 구조가 크게 변동될 수 있습니다.
Q. 알고리즘 공개 의무는 어떤 내용인가요?
배차·평점·계정 정지 결정에 사용되는 알고리즘 기준을 채용 전 노동자에게 공개하고, 불이익 결정 시 서면으로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현재 국내법에는 없는 의무입니다.
Q. 협약이 비준되지 않아도 판례에 영향을 줄 수 있나요?
있습니다. 법원과 노동위원회는 ILO 협약 취지를 기존 법률 해석 기준으로 원용해 왔습니다. 비준 전에도 판정 방향에 간접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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