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했는데 왜 처벌받았나
서류는 다 있었다, 그런데 유죄다 — 법원이 형식 구축과 실질 이행을 가르는 기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서류는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은 시행령 제4조 제3호(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와 제5호(안전보건관리책임자 평가기준) 위반을 가장 많이 인정했다. 2단계 인과관계론에 따라 안전보건관리체계 의무 위반만으로도 재해와의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
"매뉴얼도 있고 교육도 했는데 왜 처벌받았냐"는 질문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현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안전보건관리규정도 있고, 위험성평가 서류도 갖췄고, 안전보건관리책임자도 선임했는데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다는 소식이 계속 들린다. 법 조항을 가만히 읽어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런데 법원 판결문을 보면 공통된 패턴이 있다. 서류는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5년 2월 기준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1심 판결이 36건 이상 나왔다. 이 중 유죄 사건에서 가장 많이 적용된 위반 조항 두 가지는 시행령 제4조 제3호(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와 시행령 제4조 제5호(안전보건관리책임자 평가기준)다. 두 조항 모두 절차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데, 절차는 있었다. 법원이 문제 삼은 건 그 절차가 실제로 재해를 막는 방식으로 운영됐는가였다.
법은 뭐라고 하나 — 제4조·제5조와 시행령의 구조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제1항은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등에게 네 가지 의무를 부과한다. 첫째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이행, 둘째 재해 발생 시 재발방지 조치, 셋째 중앙행정기관·지방자치단체가 관계 법령에 따라 개선·시정을 명한 사항 이행, 넷째 안전·보건 관계 법령 의무이행 점검이다. 이 중 실무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건 첫 번째인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이행이다.
구체적인 의무는 시행령 제4조 각 호에 열거돼 있다. 법 제5조는 도급·용역·위탁 관계에서의 추가 의무를 규정하고, 이에 따른 시행령 제5조는 수급인 종사자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의무 이행 여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하고 미이행 사실이 확인되면 인력 배치나 예산 추가 집행 등 관리상 조치를 취하도록 한다.
| 시행령 조항 | 의무 내용 | 유죄 판결 적용 빈도 | 실무 함정 |
|---|---|---|---|
| 제4조 제1호 | 안전·보건 목표 및 경영방침 설정 | 낮음 | 대부분 서류 존재 — 내용 추상성 지적은 드묾 |
| 제4조 제2호 | 안전보건 전담 조직 설치 (인력 3명 이상 사업장) | 중간 | 명목상 설치 후 실제 권한·예산 없는 경우 문제 |
| 제4조 제3호 |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 + 반기 1회 이상 점검 | 가장 높음 (24건) | 절차 문서는 있으나 실제 개선 조치 미이행 |
| 제4조 제4호 | 안전보건 인력·시설·장비 예산 편성 및 집행 | 중간 | 예산 편성은 됐으나 실제 집행 증거 없음 |
| 제4조 제5호 |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기준 마련 + 반기 1회 이상 평가 | 높음 (22건) | 선임 서류만 있고 평가 기록 없음 |
| 시행령 제5조 | 도급·위탁 종사자 산안법 의무 반기 점검 + 미이행 시 관리 조치 | 중간 | 수급업체 관리가 서면 요청에만 그친 경우 |
왜 유죄가 됐나 — 법원이 쓰는 두 가지 논리
① 2단계 인과관계론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받으려면 의무 위반과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문제는 법원이 이 인과관계를 두 단계로 연결한다는 것이다. 1단계: 안전보건관리체계 의무 위반 → 2단계: 그 결과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 조치가 이행되지 않았고 → 그로 인해 재해가 발생했다는 구조다.
이 논리에 따르면 사고와 직접적 관련성이 멀어보이는 안전보건관리체계 의무 위반도 처벌 근거가 된다. 예컨대 고소작업 중 추락 사고가 발생했을 때, 추락 방지 장치 미설치가 직접 원인이라도 법원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가 형식에 그쳤기 때문에 산안법상 방호 조치가 이행되지 않았고, 이것이 추락으로 이어졌다는 2단계 논리로 경영책임자를 처벌한다.
② 형식 구축과 실질 이행 — 법원이 구분하는 방법
법원이 문서와 현실의 괴리를 판단할 때 주로 보는 증거는 세 가지다. 첫째, 반기 점검 기록의 실재다. 시행령 제4조 제3호와 제5호 모두 반기 1회 이상을 명시한다. 점검 일지나 평가 결과 문서가 없으면 이행 불이행으로 본다. 둘째, 개선 조치의 실행 여부다. 위험요인을 발견했다면 어떻게 조치했는지 후속 기록이 있어야 한다. 발견했지만 예산 문제로 미뤘다는 정황이 드러나면 오히려 가중 요인이 된다. 셋째,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실질적 권한이다. 선임 서류는 있으나 실제 현장 개선 지시권과 예산 집행권이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선임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다.
무죄 판결의 공통 패턴 — 어떻게 다른가
2025년 2월 기준 무죄 판결은 3건이다. 전체 유죄율 대비 무죄율이 10.7%로, 일반 형사사건 무죄율 3.1%보다 3배 높다. 이는 법 적용이 아직 불안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무죄 판결 사례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었고, 해당 사고는 합리적으로 예견하기 어려운 이례적 사고였다는 점이다. 단순히 서류를 갖춘 것이 아니라 체계 하에서 실질적인 예방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있었다.
도급 관계에서 특히 위험한 지점
중대재해처벌법 제5조는 도급·용역·위탁을 준 사업주에게도 수급업체 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과한다. 시행령 제5조에 따르면 수급인이 산안법상 의무를 이행하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직접 점검하고, 미이행 사실이 확인되면 인력 배치나 예산 추가 집행 등 실질적인 관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안전관리 책임은 수급업체에 있다는 계약 조항이나 구두 안내만으로는 이 의무를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
최근 법원 판결에서는 원청 경영책임자가 수급업체 종사자의 재해에 대해서도 유해·위험요소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이 있었다면 책임을 진다는 취지로 판시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공사 현장에서 원청이 수급업체 작업을 실질적으로 지시·감독했다면, 계약상 분리 여부와 관계없이 제5조 의무 위반 적용 가능성이 생긴다.
중대재해처벌법 자문을 하다 보면 체계는 다 구축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대표님들이 막상 반기 점검 기록이나 안전보건관리책임자 평가 결과를 보여달라고 하면 침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류와 실행 사이의 간격이 바로 검사가 공소장에 적는 내용입니다. 특히 수급업체 관리 영역은 자기 사업장 관리보다 훨씬 느슨한 경우가 많고, 원청 경영책임자가 이를 수급업체 책임으로 넘겼다가 기소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실무에서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할 것들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구축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이행이 문제다. 다음 항목은 법원이 실제 유죄 판결에서 확인 불능으로 판단한 요소들을 정리한 것이다.
- 반기 1회 이상 유해·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 조치 기록이 실재하는가 (시행령 제4조 제3호)
-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 대한 업무수행 평가 기준이 서면으로 있고, 반기 1회 이상 평가한 기록이 있는가 (시행령 제4조 제5호)
- 안전보건 예산이 편성만 됐는가, 아니면 실제 집행 내역이 있는가 (시행령 제4조 제4호)
- 도급·위탁 업체의 산안법상 의무 이행 여부를 직접 점검한 기록이 있는가, 미이행 시 어떤 조치를 취했는가 (시행령 제5조)
- 위험요인 발견 후 개선까지 완결된 클로즈드 루프 기록이 있는가
자주 묻는 질문
Q. 안전보건관리체계 서류를 다 갖췄는데도 처벌받을 수 있나요?
네. 법원은 서류 보유가 아니라 실질적 이행을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반기 점검 기록, 개선 조치 완결 증거, 안전보건관리책임자 평가 기록이 없으면 이행했다고 인정받지 못합니다.
Q. 재해와 직접 관련 없는 안전관리체계 위반도 처벌 근거가 되나요?
됩니다. 법원은 안전보건관리체계 의무 위반에서 산안법 조치 미이행, 재해 발생까지 이어지는 2단계 인과관계를 인정해 유죄를 선고합니다.
Q. 도급을 줬는데 수급업체 근로자 사고에도 경영책임자가 책임지나요?
실질적인 지배·관리 권한이 인정되면 중대재해처벌법 제5조에 따라 책임집니다. 수급업체 산안법 의무 이행 여부를 반기 1회 이상 직접 점검해야 합니다.
Q. 반기 1회 점검 의무를 언제 이행해야 하나요?
법상 최소 기준은 6개월에 1회입니다. 단 점검 기록과 개선 조치 완결 증거를 모두 보존해야 이행으로 인정됩니다.
Q.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실질적으로 운영됐고, 사고가 합리적으로 예견하기 어려운 이례적 상황이었다는 두 가지가 공통 요소입니다. 단순히 체계 서류가 있다고 무죄가 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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