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가도 공익신고 하시겠습니까" 보복소송의 그늘
비실명으로 제보했는데 신원이 드러나 고소당한 사건, 법이 왜 못 막았나
쿠팡 취업제한 명단(블랙리스트)을 비실명으로 제보한 김준호씨는 신원이 노출돼 고소당하고 압수수색까지 겪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상 형사고소는 '불이익조치'로 명시돼 있지 않아 추정 규정을 쓸 수 없다는 공백이 있다. 노동위·법원 판정 4건을 대조해 불이익조치 인정 여부가 갈린 조건을 정리했다.
공익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면 법이 막아주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아니다. 현행 공익신고자보호법은 해고·정직·전보 같은 인사상 불이익은 '불이익조치'로 명시해 추정 규정까지 두고 있지만, 사용자가 제보자를 상대로 거는 형사고소·민사소송 자체는 불이익조치 목록에 없다. 그래서 신고 내용이 진실이어도, 제보자는 수사 출석과 재판 대응을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한다.
비실명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대리신고를 한 김준호씨의 경우가 그랬다. 신고 내용은 쿠팡이 특정 언론인과 노조간부를 취업제한 명단(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올렸다는 의혹이었다. 그런데 비실명 신고였음에도 신원이 노출됐고, 쿠팡은 김씨를 고소했다. 자택 압수수색까지 이어졌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쓰러진 김씨는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보냈다. 권익위에 보호조치를 신청했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1년이 걸렸고, 그마저 기각됐다.
사건의 전말 — 제보에서 기각까지
2026년 9월 28일 열린 토론회에서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와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 소속 변호사들이 이 사례를 공개했다.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비실명 대리신고 제도가 있어도 신원 보호가 실제로는 뚫릴 수 있다는 것. 둘째, 보복 목적의 고소·소송이 법률상 '불이익조치'로 규정돼 있지 않아 공익신고자보호법 제23조의 불이익조치 추정 규정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 셋째, 보호조치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비율이 4~13.8%에 그칠 만큼 낮고, 처리에 걸리는 시간도 길다는 것이다. 토론회에서는 보복소송을 불이익조치로 명시하고, 현재는 임의적으로만 적용되는 책임감면 규정을 필요적으로 바꾸자는 개정 논의가 나왔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게 있다. 법이 바뀌기 전이라도, 신고와 관련된 징계·해고 다툼에서는 이미 여러 판정과 판결이 쌓여 있다. 문제는 그 판정들이 결과가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같은 공익신고자보호법을 놓고도 근로자가 이긴 사건과 진 사건이 갈리는데, 그 갈림의 조건을 알아야 실제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이긴 사건 vs 진 사건 — 무엇이 갈랐나
공익신고 이후 발생한 징계·보도 관련 사건 네 건을 대조하면 같은 법 조문을 두고도 결과가 정반대로 갈린 지점이 뚜렷하게 보인다.
| 사건 | 신고 내용의 공익성 | 사용자의 '다른 뚜렷한 사유' 증명 | 결과 |
|---|---|---|---|
| 경북 지역 노동위 2026년 초 판정 | 공익신고가 아니라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 공익성 인정 | 증명 못함 — 애초에 징계사유 자체가 없다고 봄 | 파면 취소, 근로자 승 |
| 부산 지역 노동위 2025년 말 판정 | 타 직원 비위행위 미신고가 신고 의무 위반인지가 쟁점 | 신고 의무가 취업규칙 등 사규에 없었음이 확인됨 | 징계 취소, 근로자 승 |
| 법원 2025나10097 (2025-09-17) | 학사행정 문제제기가 공익침해행위에 해당하는지 불분명 | 정직처분과 무관한 별도 징계사유(제1·2 사유)를 독립적으로 증명 | 항소기각, 사용자 승 |
| 법원 2024가단162492 (2025-11-26) | 부정수급 신고, 공익성 인정 | 신원을 특정 가능하게 한 보도 자체가 별도 불법행위로 인정됨 | 위자료 250만원 지급명령, 신고자 승(제3자 책임) |
공통 법리는 공익신고자보호법 제23조다. 공익신고 후 2년 이내에 불이익조치가 있었다면 일단 신고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다만 이 추정은 사용자가 신고와 무관한 다른 뚜렷한 사유를 증명하면 뒤집힌다. 경북·부산 노동위 사건은 사용자가 그 증명에 실패했다 — 정확히는 징계사유 자체가 사규에도 없었거나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다. 반면 법원 2025나10097 사건은 사용자가 신고와 무관한 별도 징계사유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데 성공하면서 추정이 깨졌다. 신고자가 이겼다고 해서 늘 '보복이었다'는 게 증명된 건 아니고, 진 경우도 '보복이 아니었다'는 게 증명된 게 아니라 '추정을 못 뒤집었다' 혹은 '뒤집었다'의 차이다.
승패를 가른 핵심 세 가지
첫째, 신고 내용이 실제로 공익침해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법원은 단순한 민원 제기나 불만 표출은 공익신고로 보지 않는다. 둘째, 사용자가 신고와 무관한 독립적 사유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는지다. 막연히 "다른 이유였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별도의 징계사유가 사규에 근거해 절차대로 진행됐어야 한다. 셋째, 신고 의무 자체가 사규에 명시돼 있었는지도 변수다. 부산 사건처럼 애초에 신고 의무가 취업규칙에 없다면, 미신고를 이유로 한 징계는 그 자체로 근거가 없다.
쿠팡 사건으로 돌아가 보면 왜 제보자가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지가 더 분명해진다. 위 네 사건은 모두 해고·정직·보도 같은 '불이익조치'가 이미 법률에 규정돼 있어 추정 규정을 다툴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형사고소·압수수색은 법률상 불이익조치 목록에 없다. 추정 규정을 꺼내볼 기회조차 없다는 뜻이다. 권익위 보호조치가 1년 걸려 기각된 것도 이 공백과 무관하지 않다. 신고자 입장에서는 법정 다툼에서 이기고 지는 것을 따지기 전에, 애초에 다툴 근거 규정 자체가 없는 영역에 놓인 셈이다.
실무 체크리스트
- 공익신고 후 인사상 불이익(해고·정직·전보·감봉)을 받은 근로자는 신고일과 처분일 사이가 2년 이내인지부터 확인한다. 2년 이내면 공익신고자보호법 제23조의 불이익조치 추정 규정을 원용할 수 있고, 사용자가 신고와 무관한 별도 사유를 사규 근거와 함께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불이익조치로 인정될 여지가 커진다.
- 비실명 대리신고를 했는데도 신원이 특정 가능하게 노출된 경우, 그 노출 경위(보도, 문서, 발언)를 캡처·기록해 확보한다. 신원 노출 자체가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으로 별도의 손해배상(위자료) 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
- 사용자가 신고자를 징계하려는 국면이라면 그 징계사유가 취업규칙·인사규정 등 사규에 명시된 의무 위반인지부터 대조한다. 사규에 없는 의무를 근거로 한 징계는 그 근거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공익신고 관련 상담을 하다 보면 신고자들이 가장 먼저 묻는 건 해고 여부가 아니라 "고소당하면 어떻게 되느냐"다. 실제로 다툼의 승패는 징계처분이 나온 뒤 사용자가 그 처분을 신고와 무관한 독립적 사유로 얼마나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느냐에서 갈리는 경우를 자주 본다. 사규에 근거 없는 의무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강행한 사건일수록 노동위 단계에서 뒤집히는 경향이 뚜렷했다.
공익신고 자체는 진실을 다퉈 이길 수 있어도, 그 과정에서 걸어오는 형사고소나 민사소송은 지금 법으로는 다툴 근거가 마땅치 않다. 이 공백이 메워지기 전까지는 신고 전 기록을 남기고, 신원 노출 경위를 놓치지 않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어선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공익신고 후 고소당하면 공익신고자보호법으로 막을 수 있나요?
현재는 형사고소·민사소송이 법률상 불이익조치에 포함되지 않아 직접 막기 어렵다.
Q. 공익신고자보호법 제23조 추정 규정은 어떻게 작동하나요?
신고 후 2년 이내 불이익조치가 있으면 신고 때문이라 추정하되, 사용자가 다른 사유를 증명하면 뒤집힌다.
Q. 비실명으로 신고했는데 신원이 드러나면 어떻게 하나요?
노출 경위를 기록해두면 공익신고자보호법 위반에 따른 별도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Q. 회사가 신고자를 징계할 때 가장 먼저 볼 것은?
징계사유가 취업규칙 등 사규에 실제로 명시된 의무 위반인지부터 대조해야 한다.
Q. 권익위 보호조치 신청은 얼마나 인용되나요?
2026년 9월 기준 인용률은 4~13.8%로 알려져 있고 처리에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출처: 매일노동뉴스 「"다시 돌아가도 공익신고 하시겠습니까" 보복소송의 그늘」(2026-09-29)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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