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O가 있었다, 대표이사는 무죄를 받았다
이천 창고 공사현장 사망사고, 경영책임자는 누구였나
경기 이천 창고시설 신축 공사에서 수급업체 근로자가 고소작업대 협착으로 숨졌지만, 법원은 도급업체 대표이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안전·보건 업무 전결권을 실제로 가진 CSO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유사 중대재해처벌법 판결 4건을 더 대조해 경영책임자 특정과 상당인과관계 판단이 갈린 조건을 정리했다.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췄다는 서류 한 장이 대표이사를 구해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대표이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는 법원 판단은 대표이사를 구할 수 있다. 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이 2025년 12월 19일 선고한 판결이 바로 그 경우다. 경기 이천의 한 창고시설 신축 공사 현장에서 수급업체 근로자가 숨졌는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으로 기소된 도급업체 대표이사는 무죄를 받았다. 이유는 체계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안전·보건 업무를 전결 권한까지 넘겨받은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전말 — 하지철물과 고소작업대 사이
2023년 3월 21일, 경기 이천시의 창고시설 신축 공사 현장에서 작업하던 수급업체 소속 근로자가 고소작업대에 탑승한 채 다음 작업 구간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하지철물 구조물과 고소작업대의 안전난간 사이에 머리가 협착돼 두부 외상으로 사망했다. 검찰은 도급업체 A사 대표이사를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의 업무 수행을 평가·관리하지 않았고, 안전보건총괄책임자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지, 수급업체가 산업재해 예방 능력을 갖췄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해야 하는데 이를 게을리했다는 것이 공소 요지였다.
수원지법 여주지원은 2025년 12월 19일 대표이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핵심 근거는 이 회사에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별도로 있었고, 그 CSO에게 안전·보건 경영에 관한 전결권이 실제로 부여돼 있었다는 점이다. 법원은 CSO가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대표이사로부터 전적으로 위임받아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었다면,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는 대표이사가 아니라 CSO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이 판단에 따라 대표이사는 애초에 이 사건에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책임을 질 주체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 사건은 신한법무법인 노동팀 뉴스레터 제21호에서 "대표이사가 아닌 CSO가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사례로 소개됐다.
출처: 신한법무법인 노동팀 뉴스레터 제21호 「중대재해처벌법위반 사건에서 대표이사가 아닌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판단」 링크
이긴 사건 vs 진 사건 — 무엇이 갈랐나
중대재해처벌법 재판에서 무죄와 유죄를 가른 조건은 두 갈래다. 하나는 '경영책임자가 누구인가'를 다시 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무 위반과 사망 사이 상당인과관계가 끊기는가'를 묻는 것이다. 우리 데이터베이스(BigCase)의 2022고단1429 판결과 최근 보도된 중대재해처벌법 무죄 사례들을 나란히 놓으면 그 경계가 보인다.
| 사건 | 쟁점 구조 | 법원 판단 | 결과 |
|---|---|---|---|
| 경기 이천 창고 신축 현장(수원지법 여주지원, 2025-12-19 선고) | CSO가 안전·보건 업무 전결권을 실제로 보유했는가 | CSO에게 전결권이 인정돼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가 아니라고 판단 | 대표이사 무죄 |
| 2022고단1429(2023-11-03 선고, BigCase) | 안전보건관리체계 자체를 구축했는가 | 국소배기장치 미설치·유해물질 정보 미고지 등 체계 자체가 없었고, 그 부재와 독성간염 사이 상당인과관계 인정 | 대표이사 등 다수 징역·집행유예, 법인 벌금 |
| 삼표산업 양주 채석장(의정부지법, 2026-02-10 선고) | 회장이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에 해당하는가 | 피고인이 법에서 규정한 경영책임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검찰 항소) | 회장 무죄, 법인·현장 관계자는 별도 처벌 |
| 대구지법 서부지원 2023고단510(2024-12-19 선고) | 압축성형기에서 튕긴 수공구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는가 | 200톤 압력·180도 고온에서 물체가 튕겨 나올 것을 예견하기 어려워 인과관계·예견가능성 모두 부정 | 피고인 전원 무죄 |
| SK멀티유틸리티 대표(대법원, 2026-07-16 확정) | 협력업체 근로자 과실이 개입된 사고에서 경영책임자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것인가 | 덤프트럭 운전자의 작업방법 위반이 개입돼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과 사망 사이 상당인과관계·회피가능성 부정한 원심 확정 | 대표 무죄 확정 |
다섯 건 가운데 유죄가 난 2022고단1429만 '체계 자체가 없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고 유해물질 정보를 알리지 않은 것은 서류의 문제가 아니라 조치 자체의 부재였다. 나머지 네 건은 결이 조금씩 다르다. 이천 사건과 삼표산업 사건은 둘 다 "이 사람이 애초에 중대재해처벌법상 책임져야 할 경영책임자가 맞는가"를 다퉜고, 대구와 SK멀티유틸리티 사건은 경영책임자라는 전제는 다투지 않은 채 "의무 위반과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끊겼는가"를 다퉜다는 점이 다르다.
출처: SK멀티유틸리티 대법원 확정 보도 — 다음뉴스(경향신문) 링크 / 대구지법 서부지원 판결 — 신한법무법인 노동팀 뉴스레터 링크, 한국경제 링크 / 삼표산업 양주 채석장 1심 무죄 — 아시아경제 링크
승패를 가른 핵심 — 누구 책임인지부터 다시 묻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에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문서로 갖췄는지가 쟁점의 전부였다. 그런데 체계를 갖춘 사업장이 늘면서 재판의 무게중심이 두 갈래로 갈렸다. 첫째는 경영책임자 특정 문제다. 이천 사건에서 법원은 CSO에게 안전·보건 업무 전결권이 실제로 있었는지를 확인한 뒤, 그 권한이 있었다면 대표이사가 아니라 CSO가 법상 책임 주체라고 봤다. 삼표산업 사건에서도 회장이 '경영책임자'라는 법적 지위 자체에 해당하는지를 따졌다. 둘 다 "안전보건관리체계가 미흡했는가"를 묻기 전에 "누구를 상대로 그 의무 이행을 물어야 하는가"를 먼저 가렸다.
둘째는 상당인과관계 문제다. 대구지법 서부지원과 SK멀티유틸리티 사건은 경영책임자라는 지위는 다투지 않았지만, 현장에서 실제로 사고를 일으킨 직접 원인(튕겨 나온 수공구, 운전자의 작업방법 위반)이 경영책임자 차원의 의무 위반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따졌다. 합리적으로 예견하기 어려운 사고였거나, 제3자의 독립적 과실이 사고를 직접 일으켰다고 보면 무죄가 났다.
이천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는 데 있다. CSO에게 실질적 권한과 예산이 위임돼 있었다면 대표이사가 아니라 CSO가 책임 주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은, 거꾸로 말하면 CSO 직제를 '이름만' 두고 실권은 대표이사가 쥐고 있는 사업장이라면 이 방패가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전결권이 문서에만 있고 실제 결재·예산 집행은 대표이사가 해 왔다면, 법원은 CSO가 아니라 대표이사를 경영책임자로 볼 가능성이 크다.
실무 체크리스트
- CSO·안전보건책임자 전결 규정과 실제 결재 라인을 대조한다. 직제표상 CSO에게 안전·보건 예산 집행권과 인사권이 있다고 적혀 있어도, 실제 결재가 대표이사 선에서 이뤄지고 있다면 전결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최근 1년치 안전보건 관련 결재 문서를 뽑아 결재자가 누구인지부터 확인한다.
- 사고 직접 원인과 경영책임자 의무 위반 사이의 거리를 나눠 정리한다. 현장 과실(조작 미숙, 수급업체 근로자의 개별 행동 등)이 사고의 직접 원인이라면, 그 과실이 경영책임자 차원의 체계 미비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현장에서 독립적으로 발생한 것인지를 구분해 둔다.
- 반기 1회 이상 수급업체 점검 기록을 날짜별로 보관한다. 이천 사건의 공소사실처럼 수급업체 안전역량 점검 의무 위반이 쟁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점검 실시일, 점검 항목, 지적사항과 개선 완료일을 묶어 '실제로 점검이 이뤄지고 있었다'는 흐름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체계가 있었는지, 책임자가 맞는지, 인과관계가 끊기는지 — 이 세 가지 질문 중 어느 하나라도 검찰이 입증하지 못하면 무죄가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 재판은 이제 '서류 대조'가 아니라 '권한과 인과의 사슬'을 따지는 쪽으로 넘어갔다.
자문 현장에서 CSO 직제를 만들어 두고도 정작 예산 집행 품의서에는 대표이사 서명만 올라가는 회사를 자주 본다. 이천 사건 이후 CSO 제도에 관심이 느는 것은 반갑지만, 전결 규정집만 손보고 실제 결재 흐름을 안 바꾸면 사고가 났을 때 법원은 서류가 아니라 돈과 사람이 실제로 누구 손에서 움직였는지를 들여다본다.
자주 묻는 질문
Q. CSO를 두면 대표이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책임을 항상 피하나?
아니다. CSO가 안전·보건 업무에 관한 전결권을 실제로 행사하고 있었다고 인정될 때만 책임 주체가 바뀔 수 있다.
Q.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서류로만 갖추면 무죄가 되나?
아니다. 체계 자체가 없었던 2022고단1429 사건처럼 미구축이 확인되면 인과관계가 쉽게 인정돼 유죄로 이어진다.
Q. 경영책임자 지위 다툼과 인과관계 다툼은 다른 것인가?
다르다. 전자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를, 후자는 '그 사람의 의무 위반이 사망을 일으켰는가'를 따지는 별개의 쟁점이다.
Q. 이 사건은 1심 확정인가?
2025년 12월 19일 선고된 1심 판결이다. 법조계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왔고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모두 항소해 2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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