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9 비자로 왔는데 임금을 못 받았다 — 외국인 근로자가 체불 임금을 받아낸 판정례
이탈 신고를 무기로 한 해고, 계절근로자 임금 미지급 — 이긴 사건과 진 사건의 결정적 차이
E-9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체불·부당해고 판정례를 분석합니다. 이탈 신고를 해고 수단으로 활용한 사업주에게 부당해고 판정을 내린 서울행정법원 판결, 계절근로자 578만 원 체불 인정, 건강 악화로 쉰 용접공 부당해고 인정까지 — 승패를 가른 결정적 기준은 '누가 먼저 근로관계를 끊었느냐'입니다.
월급날이 지나도 통장에 돈이 안 들어온다. 사장에게 물으면 "조금만 기다려"를 반복한다. 한국어가 서툰 E-9 비자 외국인 근로자에게 이 상황은 공포 그 자체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이상 사업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고, 싸우다 잘리면 비자 자체가 위험해진다. 그래서 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체불을 '참는다'. 그런데 참지 않고 법정까지 간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겼다. 외국인 근로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며, 체류자격과 관계없이 임금 청구권을 가진다는 것은 대법원이 1995년부터 확립한 원칙이다(대법원 95누2050).
이긴 사건 ① — 멸치 포장 계절근로자, 578만 원을 돌려받다
2021년 경남의 한 수산물 가공업체에서 중국 국적 계절근로자 여러 명이 멸치 포장 작업을 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자 회사는 이들을 내보냈다. 문제는 약속한 임금을 다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로자들은 서울남부지방법원에 미지급 임금 청구 소송을 냈다.
법원은 해고무효확인 청구는 각하했다. 이미 계약 기간이 끝나 근로관계가 소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지급 임금 청구는 전액 인정했다. 근로자 1인당 약 578만 원의 체불 임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계절근로(E-8) 비자 신분이어도 실제 근로를 제공한 기간의 임금은 반드시 지급해야 한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 서울남부지방법원 2022가합100128 판결 (2023. 8. 25. 선고)
이긴 사건 ② — 아프다고 쉬었더니 해고? 부산고법 "부당하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한 용접공이 부산의 제조업체에서 일하다 건강이 나빠졌다. 병원 치료를 받으며 잠시 쉬었는데, 회사는 이를 이유로 그를 일방적으로 내보냈다. 근로자는 부당해고와 미지급 임금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부산고등법원은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건강상 이유로 병원에 다니며 쉰 것은 정당한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해고무효를 선언하고 밀린 임금도 함께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사업주가 먼저 근로관계를 끊었느냐'다. 근로자가 자진 퇴사한 것이 아니라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출근을 막은 것이므로 해고에 해당하고,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는 근로기준법 제23조 위반이다.
▶ 부산고등법원 2025나10167 판결 (2025. 9. 25. 선고)
이긴 사건 ③ — 이탈 신고를 무기로 쓴 사업주, 행정법원이 제동
가장 극적인 사건이다. 한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주와 갈등을 빚자 사업주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사업장 이탈' 신고를 해버렸다. 이탈 신고가 접수되면 외국인 근로자는 즉시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다. 일종의 '비자를 무기로 한 해고'였다.
근로자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지방노동위원회도, 중앙노동위원회도 기각했다. 근로자는 포기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중노위 판정을 뒤집었다. "사업주의 이탈 신고는 실질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킨 행위, 즉 해고에 해당한다. 그 해고는 근로기준법 제23조가 요구하는 정당한 이유가 없으므로 부당해고다." 고용허가제의 특수성을 악용한 이탈 신고를 법원이 해고 행위로 포착하고 부당성을 인정한 중요한 선례다.
▶ 서울행정법원 2024구합860 판결 (2025. 5. 16. 선고)
진 사건 — 실제로 이탈했다면 결과가 달라진다
외국인 근로자가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근로자 스스로 무단으로 사업장을 이탈한 경우에는 법원의 판단이 정반대로 갈린다.
- 스리랑카 국적 근로자가 약 2개월 반 동안 출근하지 않았고, 회사가 고용계약을 해지했다. 창원지방법원은 "장기 무단이탈은 고용계약 해지의 정당한 사유"라며 청구를 기각했다. (창원지방법원 2020나319, 2021. 7. 8.)
- 태국인 근로자가 해고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법원은 근로자 스스로 사업장을 이탈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대전지방법원 2023가단228852, 2024. 6. 12.)
승패를 가른 결정적 기준은 단 하나다. "누가 먼저 근로관계를 단절했느냐." 사업주가 먼저 단절하면 부당해고, 근로자가 먼저 이탈하면 정당한 계약 해지다.
체류자격과 관계없이 임금은 보장된다 — 대법원 확립 원칙
대법원은 1995년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이라도 사실상 근로를 제공했으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원칙을 확립했다(대법원 95누2050). 2006년에는 퇴직금과 최저임금도 내국인과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확인했다(대법원 2006다53627). 사업주 측이 "불법체류자라서 임금을 줄 필요 없다"고 주장해도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대구지방법원은 태국 국적 근로자에게 근로조건 서면 미교부, 연차미사용수당 미지급, 퇴직금 미지급을 한 사업주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대구지방법원 2023고단1363). "외국인이니까 대충 해도 된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실무 체크리스트
외국인 근로자가 임금을 못 받았을 때
- 증거 확보 먼저 — 근로계약서, 급여명세서, 출퇴근 기록, 통장 내역을 모두 챙긴다
- 고용노동부 진정 접수 —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접수 가능하며, 근로감독관이 조사에 나선다
- 사업장 변경 신청 가능 여부 확인 — 월 임금 30% 이상이 2개월 이상 체불되면 사업장 변경 신청이 가능하다(외국인고용법 제25조 제1항 제2호)
- 형사고소 병행 — 임금 체불은 근로기준법 제109조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 대상이다
- 대한법률구조공단 무료 법률구조 — 외국인 근로자 전담 창구를 운영하며 소송 비용도 지원한다
사업주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
-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근로조건 서면 교부는 의무다 — 위반 시 500만 원 이하 벌금(근로기준법 제17조, 제114조)
- '이탈 신고'를 해고 수단으로 활용하면 법원은 이를 부당해고로 판단한다
- 퇴직 시 14일 이내 임금·퇴직금 정산은 내국인과 완전히 동일하게 적용된다(근로기준법 제36조)
- 체류자격이 없다고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인식이다
한 줄 정리
비자가 불안정해도 임금 청구권은 흔들리지 않는다. 대법원은 30년 전부터 이 원칙을 지켜왔고, 최근 하급심 판결들은 '이탈 신고를 무기로 한 사실상 해고'까지 부당해고로 잡아내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유로 체불을 참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자주 묻는 질문
Q. E-9 비자 외국인 근로자도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나요?
네, 가능합니다. 체류자격과 관계없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면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2024구합860 판결이 이를 명확히 확인했습니다.
Q. 사업주가 이탈 신고를 했는데 이게 해고인가요?
법원은 이탈 신고가 실질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행위라면 해고로 판단합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이탈 신고를 이용해 근로자를 내보낸 경우 부당해고가 됩니다(서울행정법원 2024구합860).
Q. 임금을 못 받았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근로계약서·급여명세서·출퇴근 기록 등 근로 제공 증거를 확보한 뒤,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접수하세요. 체류자격과 무관하게 접수 가능하며, 형사고소와 병행할 수 있습니다.
Q. 외국인 근로자에게도 퇴직금이 발생하나요?
네. 1년 이상 계속 근로한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내국인과 동일하게 퇴직금이 발생합니다. 대법원 2006다53627 판결로 확립된 원칙입니다.
Q. 체류자격이 없어도 임금을 청구할 수 있나요?
청구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1995년부터 취업자격 없는 외국인이라도 실제 근로를 제공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서 임금 청구권이 있다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95누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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